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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파산 직전 회사에서 받은 돈, "원래 받을 돈 있었으니 퉁치자(상계하자)" 주장, 가능할까? (대법원 2025다20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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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회사가 파산하기 직전, 특정 채권자에게만 빚을 갚는 '편파 변제' 행위가 나중에 파산관재인에 의해 무효가 되어 돈을 다시 토해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면, 그 채권자는 "원래 그 회사에 받을 돈이 있었으니, 돌려줄 돈과 상계하여 퉁치자"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그럴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는 파산 절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모든 채권자에 대한 공평한 변제'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편파 변제로 얻은 이익을 상계를 통해 유지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중요한 판결입니다.

사실관계 정리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법리 중심으로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편파적인 변제: A회사(원고)는 곧 파산할 위기에 처한 B회사(소외 회사)로부터 빚을 변제받았습니다. B회사가 다른 여러 채권자들의 빚은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A회사에만 변제한 것은 다른 채권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편파행위'에 해당할 수 있었습니다.
  • 파산과 파산관재인의 부인권 행사: B회사는 결국 파산했고, 법원은 파산 절차를 진행할 파산관재인(피고)을 선임했습니다. 파산관재인은 A회사가 받은 돈이 불공정한 편파 변제라고 판단하고, 이를 무효로 하여 다시 파산재단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부인권'을 행사했습니다.
  • 채권자의 상계 주장: 부인권 행사로 인해 A회사는 받았던 돈을 파산관재인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원상회복의무)가 생겼습니다. 이에 파산관재인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A회사는 "원래 B회사에 받을 돈(파산채권)이 있었으니, 파산관재인에게 돌려줄 돈과 상계하여 지급을 거절하겠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서울고등법원)의 판단: 법원은 A회사의 상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파산관재인의 부인권 행사로 발생한 원상회복의무는 파산 절차에서 상계가 금지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A회사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A회사가 불복하여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며 A회사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주요 법리

대법원은 '채권자 평등의 원칙'과 '부인권 제도의 취지'를 중심으로 A회사의 상계 주장이 왜 허용될 수 없는지를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1. 파산 절차의 대원칙: 채권자 평등

파산 절차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파산한 회사의 남은 재산을 모든 채권자에게 법이 정한 순서와 비율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채권자 평등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2. '부인권'은 채권자 평등을 지키는 칼

만약 파산 직전에 회사가 특정 채권자에게만 빚을 갚아버리면, 그만큼 다른 채권자들에게 돌아갈 재산이 줄어들어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부인권은 바로 이러한 불공평한 행위의 효력을 무효로 만들어, 특정인에게만 흘러 들어간 재산을 다시 파산재단으로 가져와 모든 채권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파산관재인의 강력한 권한입니다.

3. '상계' 주장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

대법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상계를 허용한다면 부인권 제도의 취지가 완전히 무력화된다고 보았습니다.

  • 상계를 허용할 경우의 문제점: 만약 A회사의 상계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A회사는 사실상 자신의 채권 전액을 다른 채권자들보다 먼저 변제받는 것과 같은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이는 부인권을 통해 막으려 했던 바로 그 '편파 변제'를 법원이 상계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주는 셈이 됩니다.
  • 부인권 행사에 따른 원상회복의무의 성격: 대법원은 부인권 행사로 인해 A회사가 부담하게 된 '돈을 돌려줄 의무'는 일반적인 채무와 성격이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A회사가 다른 채권자들을 해하는 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원상회복의무'이므로, 법에서 예외적으로 상계를 허용하는 '법정의 원인'에 따른 채무로 볼 수 없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파산관재인의 부인권 행사에 대항하여 상계를 주장하는 것은 채권자 평등이라는 대원칙과 부인권 제도의 근본 취지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판결은 파산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법리를 재확인하고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파산 제도의 근간인 '채권자 평등의 원칙'을 강력하게 수호했습니다. 특정 채권자가 파산 직전에 얻은 부당한 이익을 상계를 통해 유지하려는 시도에 대해 명백한 제동을 걸었습니다.

둘째, 채권자들에게 중요한 경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거래 상대방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만 유리한 변제를 받는다면, 나중에 파산 절차에서 그 모든 것이 무효가 될 수 있으며, '원래 받을 돈이 있었다'는 항변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셋째, 파산관재인의 부인권이라는 핵심적인 권한이 상계권에 의해 무력화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여 파산재단의 충실한 관리와 공정한 배당 절차 진행을 보장하는 법적 토대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용어 안내

  • 파산관재인(破産管財人): 법원이 선임하여, 파산한 채무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모든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배당하는 역할을 하는 중립적인 전문가입니다.
  • 부인권(否認權): 파산관재인이 파산재단의 보전을 위해, 파산 전에 채무자가 한 불공정한 행위(특히 특정 채권자에게만 유리한 편파 변제)의 효력을 부인하고, 그 재산을 다시 파산재단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강력한 권한입니다.
  • 상계(相計): 두 사람이 서로 같은 종류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을 때, 각자의 채무를 대등한 금액에서 소멸시키는 일방적인 의사표시를 말합니다. 흔히 '퉁친다'고 표현합니다.

편파행위(偏頗行爲) / 편파변제(偏頗辨濟): 채무자가 지급불능 상태에서 여러 채권자 중 특정인에게만 빚을 갚아 다른 채권자들의 평등을 해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부인권 행사의 주요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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