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국내서 백신 원료만 만들어 수출, 특허 침해일까? (대법원 2025다202598)

정성화 변호사 2025. 6. 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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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국내 제약사가 특허 등록된 백신의 핵심 원료들을 모두 한국에서 생산한 뒤 해외로 수출하고, 해외 파트너사가 이를 단순히 혼합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경우, 이는 국내 특허권 침해에 해당할까요? 대법원은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조립·혼합 단계가 기술적으로 간단치 않다면 국내에서의 원료 생산 행위만으로는 특허의 직접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연구·시험을 위해 국내에서 소량의 완제품을 생산한 행위 역시 특허 침해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아,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생산 및 연구개발 활동에 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사실관계 정리

  • 특허권자: 글로벌 제약사(원고)로, 13가지 혈청형을 포함하는 '다가 폐렴구균 다당류-단백질 접합체 조성물'에 대한 백신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 국내 제약사의 행위: 국내 제약사(피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행위를 했습니다.
  1. 원료 생산 및 수출: 특허 백신을 구성하는 13종의 각 개별 접합체 원액을 국내에서 생산한 뒤, 이를 모두 러시아의 제약회사로 수출했습니다. 러시아 제약회사는 이 원료들을 혼합하여 최종 완제품 백신을 생산했습니다.
  2. 시험용 완제품 생산: 위와는 별개로, 국내에서 네 차례에 걸쳐 소량의 완제품 백신을 직접 생산하여, 러시아에서의 비임상 및 임상시험, 기술 이전 확인 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 특허권자의 소송: 특허권자는 국내 제약사의 이러한 행위들이 자신들의 특허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며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 (특허법원): 법원은 국내 제약사의 행위가 직접 침해, 간접 침해, 부정경쟁행위 등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허권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특허권자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주요 법리

이번 판결은 여러 쟁점에 걸쳐 특허 침해의 성립 요건을 명확히 했습니다.

1. 부품만 만들어 수출하는 행위: '직접 침해'가 아닌 이유

특허 침해는 원칙적으로 특허가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효력이 미칩니다(속지주의 원칙). 또한, 특허 발명의 모든 구성요소를 그대로 포함해야만 직접 침해가 성립합니다(구성요소 완비의 원칙).

다만 대법원은 과거 판례를 통해, 국내에서 반제품까지 만들고 해외에서의 마지막 조립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국내 생산으로 보아 직접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13종의 각기 다른 원액을 최종 백신으로 만드는 혼합 공정은 결코 사소하거나 간단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원액의 투입량, 혼합 순서, 비율, 온도, 교반 속도 등 여러 조건이 최종 백신의 핵심 효과인 '13가 면역원성' 구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원료를 생산한 것만으로는 특허 발명의 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직접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 그렇다면 '간접 침해'는 성립할까?

간접 침해는 특허품의 '생산'에만 사용되는 물건을 국내에서 공급하는 경우 등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생산' 행위가 국내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최종 완제품의 생산이 국외(러시아)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전 단계인 원료 공급 행위가 국내에서 있었더라도 간접 침해는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3. '연구 또는 시험'을 위한 생산은 특허 침해의 예외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는 '연구 또는 시험'을 하기 위한 특허발명의 실시에는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기술의 발전을 위한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국내 제약사가 국내에서 생산한 네 차례의 완제품 백신은, 그 목적이 러시아에서의 임상시험 및 기술 이전 분석 등을 위한 것이었고 판매용이나 유통용이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특허권자의 독점적 이익이 불합리하게 훼손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는 특허법이 허용하는 '연구 또는 시험'을 위한 실시에 해당하므로 특허 침해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특히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제약·바이오 산업에 매우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그 예외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습니다. 국내에서 핵심 중간체나 원료를 생산하더라도,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마지막 생산 단계가 해외에서 이루어진다면 국내 특허권 침해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 등을 수행하는 데 있어 법적 불확실성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둘째, '연구·시험을 위한 실시' 예외 규정을 폭넓게 인정했습니다. 의약품의 품목허가나 기술 이전을 위해 필수적인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 등은, 상업적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신약 개발 및 연구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은 국내 기업이 특허 장벽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전략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특허권의 보호와 기술 발전의 촉진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용어 안내

  • 특허권의 속지주의(屬地主義): 특허권의 효력은 그 특허를 등록한 국가의 영토 내에서만 미친다는 원칙입니다.
  •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s Rule): 직접적인 특허 침해가 되려면, 침해 의심 제품이 특허의 청구범위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 간접침해(間接侵害): 직접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지만, 특허품의 생산에만 사용되는 물건을 공급하는 등 침해를 실질적으로 유발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특허 침해로 보는 제도입니다.

연구 또는 시험을 위한 실시: 특허법상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예외 중 하나로, 특허 발명의 내용을 검증하거나 더 나은 발명을 위해 연구·시험 목적으로 특허 기술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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