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군대 PX 납품, '직접 판매'인가 '위탁 판매'인가? 수백억 세금의 향방 (대법원 2023두47473)

정성화 변호사 2025. 6. 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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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화장품 회사가 군 마트(PX)에 제품을 납품하는 거래의 성격은 무엇일까요? 회사가 군대에 제품을 직접 팔고 끝나는 '일반 매매'일까요, 아니면 군대가 회사를 대신해 장병들에게 팔아주는 '위탁매매'일까요? 이 미묘한 차이에 따라 수백억 원의 부가가치세가 오갈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보다는 거래의 실질적인 내용을 따져봐야 한다며, "제품 판매에 따른 위험 부담과 경제적 효과가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실관계 정리

  • 계약 체결: 한 화장품 회사(원고)는 국군복지단과 '위·수탁거래 계약서'라는 이름의 계약을 맺고, 전국의 군 마트(PX)에 화장품을 납품했습니다.
  • 대금 정산 방식: 국군복지단은 군 장병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한 후, 그 판매대금 총액에서 사전에 약정한 일정 비율의 '복지금'과 각종 수수료를 떼고 남은 금액을 매달 화장품 회사에 지급했습니다.
  • 부가가치세 신고: 화장품 회사는 국군복지단이 가져간 '복지금'을 제외하고, 자신들이 실제로 받은 금액만을 공급대가로 하여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했습니다.
  • 과세관청의 처분: 그러나 세무서(피고)는 "이 거래는 화장품 회사가 국군복지단에 판매를 위탁한 '위탁매매'이므로, 장병들이 낸 판매가격 전체가 화장품 회사의 공급대가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지금'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누락했다"고 보고 수백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추가로 부과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서울고등법원)의 판단: 법원은 화장품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거래의 여러 측면을 볼 때, 이는 위탁매매가 아니라 화장품 회사가 국군복지단에 물건을 파는 일반적인 매매 계약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세무서의 부가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세무서가 상고하자,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이 거래의 실질이 '위탁매매'에 해당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보았습니다.

주요 법리

대법원은 계약서의 제목이나 세금계산서 형식 같은 겉모습이 아닌, 거래의 실질적인 내용을 통해 '일반 매매'와 '위탁매매'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 부가가치세법상 '위탁매매'의 특별한 취급

부가가치세법은 위탁매매의 경우, 물건을 맡긴 사람(위탁자)이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재화를 공급한 것으로 봅니다. 즉, 이 사건에서는 화장품 회사가 군 장병에게 직접 화장품을 판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렇게 되면 장병이 지불한 판매가격 전체(복지금 포함)가 화장품 회사의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이 됩니다.

2. 대법원이 '위탁매매'로 본 결정적 근거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종합할 때, 이 거래의 실질은 위탁매매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 계약서의 명칭과 문언: 계약서의 제목 자체가 '위·수탁거래 계약서'였고, 그 내용에도 판매를 '위탁'한다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 위험 부담의 주체: 화장품 회사는 제품을 군 마트에 납품한 이후에도, 최종적으로 장병에게 판매되기까지 발생하는 제품의 손상, 분실 등의 모든 위험을 직접 부담했습니다. 만약 국군복지단이 물건을 사들인 것이라면 그 위험은 국군복지단이 져야 합니다.
  • 대금 정산 구조와 경제적 효과: 국군복지단은 판매 실적에 연동된 일정 비율의 수수료(복지금 등)만 가져갔을 뿐, 판매로 인한 궁극적인 손익은 모두 화장품 회사에 귀속되었습니다. 이는 판매를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위탁판매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 가격 결정권: 최종 판매가격 역시 화장품 회사의 시중 판매가를 기준으로 결정되어,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이 화장품 회사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질적인 내용을 종합하면, 국군복지단은 자기 명의로 판매하되 계산은 화장품 회사의 것으로 하는 위탁매매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판결은 세법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실질과세의 원칙'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 사례입니다.

첫째,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이 우선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기업들은 세금 문제를 다룰 때, 계약서의 제목이나 세금계산서 발행 형식만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과세관청과 법원은 언제든 그 거래의 경제적 실질을 파고들어 판단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줍니다.

둘째, '위험과 효익의 귀속'이라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거래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그 거래로 인한 위험을 최종적으로 누가 부담하고, 그 이익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핵심적인 기준이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 플랫폼 등과 같이 유통 채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수많은 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유통 채널과의 계약 방식(직매입, 특정매입, 위탁판매 등)에 따라 세금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계약 단계부터 거래의 법적, 세무적 성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용어 안내

  • 부가가치세(VAT): 상품이나 서비스가 생산·유통되는 과정에서 더해지는 가치(부가가치)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지만, 사업자가 거래 단계마다 징수하여 국가에 납부합니다.
  • 위탁매매(委託販賣): 물건의 주인이(위탁자) 다른 사람(수탁자)에게 자신의 물건을 대신 팔아달라고 맡기고, 수탁자는 판매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거래 형태를 말합니다.
  • 공급대가(供給對價): 부가가치세법상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고 받은 금전적 대가로,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금액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을 정하는 기초가 됩니다.

실질과세의 원칙(實質課稅의 原則): 세법을 적용할 때,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상관없이 그 경제적 실질 내용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국세기본법상의 대원칙입니다.

 


 

법률 상담 문의: 02-2038-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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