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 전세보증금 부풀린 '업계약서'로 받은 대출, 보증기관이 책임져줄까? (대법원 2023다244871)
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더 많은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임대인과 짜고 실제보다 전세보증금을 부풀린 '업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이용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받아 대출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세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보증을 서준 HUG는 은행에 대출금을 대신 갚아줘야 할까요? 대법원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판결했습니다. 전세보증금 액수와 같이 중요한 사항이 거짓으로 기재된 계약서는 보증약관의 면책사유인 '허위의 전세계약'에 해당하므로, 보증기관은 보증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관계 정리
- '업계약서'를 이용한 대출: 한 세입자(소외 1)는 A은행(원고)에서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전세계약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계약서에는 전세보증금이 2억 6,400만 원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 HUG의 보증과 대출 실행: A은행은 이 계약서를 근거로 HUG(주위적 피고)의 '전세금안심대출보증'을 받아 세입자에게 2억 1,000만 원을 대출해 주었습니다. HUG의 보증약관에는 "사기 또는 허위의 전세계약으로 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보증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었습니다.
- 드러난 진실: 사실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실제로 지급한 총 전세보증금은 2억 3,000만 원이었습니다.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 계약서상 보증금을 3,400만 원 부풀린 것입니다.
- 대출 사고와 소송: 대출 만기가 되었지만 세입자는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이에 A은행은 보증을 선 HUG에 대신 갚아달라고 요구했지만, HUG는 '허위의 전세계약'이라며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A은행은 HUG를 상대로 보증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 법원은 A은행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계약서상 금액과 실제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2억 3,000만 원의 임대차 계약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므로, 이는 약관에서 말하는 '허위의 전세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HUG가 보증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HUG가 상고하자,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며 사실상 HUG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주요 법리
대법원은 보증약관에 명시된 '허위의 전세계약'의 의미를 보다 실질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1. '허위의 전세계약'이란? 전부가 거짓일 필요는 없다!
원심은 계약 전체가 가짜일 때만 '허위 계약'이라고 보았지만,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약관의 문언과 취지를 볼 때, 계약 내용 전부가 허위일 필요는 없고, 일부만 허위인 경우도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2. '중요한 사항'의 허위가 문제다
다만, 계약서의 사소한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보증 책임을 면제해준다면, 보증을 믿고 대출해준 은행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그 허위 내용이 보증계약 체결 여부나 보증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항'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3. 전세보증금 액수는 '중요한 사항'인가? → 그렇다!
대법원은 부풀려진 전세보증금 액수는 바로 이 '중요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출 심사에 미치는 영향: 세입자는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 보증금을 부풀렸고, 이는 은행과 HUG의 대출 및 보증 심사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 보증기관의 구상권 확보 문제: HUG는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뒤, 세입자의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권을 넘겨받아 손실을 회수합니다. 그런데 실제 보증금이 계약서보다 적으면, HUG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도 그만큼 줄어들어 직접적인 손실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보증금 액수는 HUG의 구상권 확보와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세보증금이라는 중요한 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업계약서'는 보증약관에서 정한 '허위의 전세계약'에 해당하므로, HUG는 보증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판결은 전세 대출 시장에 만연한 '업계약서' 관행에 철퇴를 내린 매우 중요한 판결입니다.
첫째, '업계약서'는 명백한 사기·허위 계약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출 한도를 높이기 위한 관행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이를 근거로 한 공적 보증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습니다.
둘째, 대출을 실행하는 은행의 책임과 심사 의무를 강화했습니다. 앞으로 은행들은 단순히 서류와 HUG 보증만 믿고 대출을 내주기 어려워졌습니다. 대출을 실행하기 전에 실제 보증금이 모두 지급되었는지 확인하는 등, 전세계약의 진정성을 검증할 보다 엄격한 절차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만약 허위 계약서에 기반한 대출 사고가 발생하면 그 손실을 은행이 떠안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공적 보증 재원의 건전성을 보호했습니다. HUG와 같은 공공기관의 보증 재원이 사기 대출에 낭비되는 것을 막고, 선량한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지원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사용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판결은 전세 대출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당한 대출 관행을 근절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용어 안내
- 전세금안심대출보증: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세입자의 전세대출 원리금 상환 책임과, 나중에 집주인에게 돌려받아야 할 전세보증금 반환 책임까지 함께 보증해주는 공적 보증 상품입니다.
- 업계약서: 실제 거래 가격보다 금액을 부풀려서 작성한 허위 계약서를 말합니다.
- 면책사유(免責事由): 계약에서, 특정 조건이 발생했을 때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계약상 의무(책임)를 면하게 되는 사유를 의미합니다.
- 구상권(求償權):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준 사람이, 원래 빚을 져야 할 사람에게 그 갚아준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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