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교통사고, 내 과실이 70%인데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다면? 구상금 폭탄 맞을까? (대법원 2022다235009)

반응형

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교통사고에서 피해자의 과실이 더 크더라도, 자동차 책임보험이 있다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비용 대부분을 보험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번 판결은 교통사고 피해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실관계 정리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사고 발생: 2018년 7월, B씨가 운전하던 택시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 운전자 A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 과실 비율: 이 사고에서 피해자 A씨의 과실이 70%, 가해 운전자 B씨의 책임은 30%로 정해졌습니다.
  • 치료와 진료비: A씨는 약 40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총 진료비 3,514,170원 중 건보공단이 2,501,150원을 부담했고, 나머지는 A씨가 부담했습니다.
  • 구상금 청구: 이후 건보공단은 자신들이 부담한 치료비 250만 원을 돌려달라며, B씨 택시가 가입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이하 '택시공제조합')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2심)의 판단: 법원은 "건보공단은 가해자의 책임 비율만큼만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건보공단이 지급한 2,501,150원 중 가해자 책임 비율인 30%에 해당하는 약 75만 원만 돌려받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피해자의 과실이 큰 경우, 그 과실 부분에 해당하는 치료비는 건보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배법)의 특별 규정을 근거로, 원심의 계산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주요 법리

이번 판결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법리는 '자배법 시행령의 특별 규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법원의 새로운 구상금 산정 방식입니다.

1. 일반 원칙: 가해자 책임비율만큼만 구상

원칙적으로 건보공단이 피해자를 치료해주고 가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때, 그 범위는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됩니다. 피해자의 과실에 해당하는 부분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이 최종적으로 부담하여 과실이 있는 피해자도 보호하려는 취지입니다. 원심은 이 원칙에만 따라 판단했습니다.

 

2. 중요한 예외: 자동차 책임보험의 피해자 보호 특별 규정

하지만 대법원은 자동차 책임보험의 경우 다른 계산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자배법 시행령에는 매우 중요한 단서 규정이 있습니다.

 

  • 특별 규정의 내용: 교통사고 피해자의 손해액(과실상계 후 금액)이 실제 발생한 진료비보다 적을 경우, 피해자의 과실과 상관없이 실제 발생한 진료비 전액을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통사고 피해자의 치료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3. 대법원의 새로운 구상금 계산법

대법원은 이 특별 규정에 따라, 건보공단이 대위(대신 청구)할 수 있는 책임보험금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 1단계 (가해자 본래 배상액 부분): 가해자의 원래 손해배상액(총 진료비 × 가해자 책임비율 30% = 약 105만 원)에 대해서는, 건보공단 부담금 중 가해자 책임비율(250만 원 × 30% = 약 75만 원)만큼 구상할 수 있습니다.
  • 2단계 (특별 규정으로 증액된 부분): 특별 규정에 따라 추가로 지급되는 보험금(실제 진료비 약 351만 원 - 가해자 본래 배상액 약 105만 원 = 약 246만 원)에 대해서는, 피해자 과실과 관계없이 전액을 대위하여 구상할 수 있습니다.
  • 결론: 따라서 건보공단은 1단계 금액(약 75만 원)과 2단계 금액(약 246만 원)을 합한 금액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합계액이 건보공단이 실제 지출한 비용(약 250만 원)을 넘을 수 없으므로, 최종적으로 건보공단은 자신이 부담한 2,501,150원 거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됩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교통사고 처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 교통사고 피해자 보호 강화: 내 과실이 70%나 되더라도,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것에 대해 나중에 건보공단으로부터 구상금 폭탄을 맞을 걱정을 덜게 되었습니다. 사고 피해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한 것입니다.
  •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 기여: 교통사고 치료 비용을 피해자의 과실을 이유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을 막고, 사고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있는 자동차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모든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낭비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 법리 명확화: 자동차 책임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과실이 있는 피해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향후 유사 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줄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은 교통사고라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처한 개인을 보호하고, 사회 안전망으로서 건강보험과 책임보험의 역할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용어 안내

  • 구상금(求償金):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빚을 갚아준 사람이 원래 빚을 갚아야 할 사람에게 그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하는 돈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건보공단이 가해자를 대신해 치료비를 내주고, 그 돈을 가해자의 보험사에 청구하는 것입니다.
  • 책임보험(責任保險):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으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했을 때 최소한의 피해 보상을 하기 위한 보험입니다.
  • 과실상계(過失相計): 손해배상 금액을 정할 때, 피해자에게도 잘못(과실)이 있는 경우 그 잘못의 비율만큼 배상액에서 빼는 것을 말합니다.

공단부담금(公團負擔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신 납부해주는 금액을 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