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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냉온정수기 특허, 온수 기능 뺀 제품도 침해일까?" - 대법원 2022다265123 판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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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내가 가진 '냉온(冷溫)정수기' 특허 기술의 일부를 사용했지만 '온수 기능'은 뺀 경쟁사의 '냉수 전용 정수기'는 내 특허권을 침해한 것일까요? 대법원은 "특허의 청구항에 기재된 구성요소 중 단 하나라도 빠져있다면 원칙적으로 특허 침해가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특허권의 보호 범위가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의 '완전한 결합'에 있음을 명확히 한 사례로, 특허 출원과 분쟁 대응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실관계 정리

  • 원고(A사): '하나의 증발기로 제빙과 동시에 냉수를 얻을 수 있는 냉온정수시스템 및 장치'라는 명칭의 특허권을 보유한 회사입니다.
  • 피고(B사): 정수기 제조·판매 회사입니다.
  • 소송의 발단: A사는 B사가 판매하는 두 종류의 제품(제품 1, 제품 2)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특허권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피고 제품 1: A사의 특허처럼 냉수, 온수, 제빙 기능이 모두 있는 냉온정수기였지만, 내부 기술 구성이 다르다고 주장되었습니다.
  • 피고 제품 2: A사 특허와 유사한 기술을 사용했지만, 온수 기능이 없는 '냉수 및 얼음 전용 정수기'였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 (서울고등법원): 피고 B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B사의 두 제품 모두 A사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법원: A사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A사의 상고를 최종 기각했습니다.

주요 법리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특허 침해를 판단하는 중요한 법리 세 가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1. 청구범위 해석의 원칙 (제품 1 관련)

특허권의 보호 범위는 특허 명세서의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따라 정해집니다.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을 참고하여 기술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지만, 이를 근거로 청구범위를 마음대로 넓히거나 좁혀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원칙에 따라 A사 특허의 구성요소와 B사 제품 1의 구성요소는 서로 동일하지 않다고 본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 균등 침해 판단의 원칙 (제품 1 관련)

설령 구성요소가 문자 그대로 동일하지 않더라도, ▲과제 해결원리가 동일하고 ▲실질적으로 동일한 작용효과를 나타내며 ▲그러한 변경이 해당 기술 분야의 전문가에게 매우 쉬운 정도라면 '균등 관계'에 있어 침해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B사 제품 1이 A사 특허의 핵심적인 기술사상, 즉 '과제 해결원리'가 달라 균등 침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3. '하나라도 빠지면 침해가 아니다' -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 (제품 2 관련)

이것이 이번 판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 법리: 특허는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체'로서의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지, 각각의 구성요소를 독립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침해라고 주장되는 제품이 특허 청구항의 구성요소 중 단 일부라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원칙적으로 특허권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일부 구성요소가 덜 중요해 보인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특허의 범위를 사후에 넓혀주는 셈이 되어 허용될 수 없습니다.
  • 법원의 판단: A사의 특허는 명칭부터 '냉온정수시스템', '냉온정수기'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온수 기능'이 특허 발명의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B사의 제품 2는 온수 관련 구성이 아예 빠져있으므로 '냉온정수기'가 아닙니다. 따라서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에 따라 B사의 제품 2는 A사의 특허권을 침해한 제품이 아니라고 대법원은 최종 판단했습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판결은 특허권자 및 기술 개발 기업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 특허 청구범위 작성의 중요성: 특허의 힘은 '청구범위'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A사는 '냉온정수기'라고 청구범위를 한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온수 기능이 없는 제품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내 기술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호받고 싶은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All Elements Rule'의 재확인: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은 특허 침해 소송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 원칙은 경쟁사에게 특허를 회피하여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디자인 어라운드(Design Around)'의 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즉, 경쟁사 특허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만이라도 제거하거나 다른 기술로 대체함으로써 특허 침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특허는 '아이디어'가 아닌 '구성의 결합'을 보호: 막연한 아이디어나 기술 전체가 아닌, 청구범위에 명시된 구체적인 '구성요소들의 결합'만이 특허권의 보호 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특허는 강력한 권리이지만 그 보호 범위는 생각보다 엄격하게 제한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기술 사업화를 위해서는 특허 출원 단계부터 분쟁까지 전 과정에 걸쳐 면밀한 법적 검토와 전략 수립이 필수적입니다.


용어 안내

  • 청구범위(Claims): 특허출원서의 일부로, 특허권자가 독점적 권리를 요구하는 기술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부분. 특허의 '권리서'와 같습니다.
  • 문언 침해(Literal Infringement): 침해 의심 제품이 특허의 청구범위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문자 그대로 전부 포함하고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 균등 침해(Equivalent Infringement): 침해 의심 제품이 청구범위의 구성과 일부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그 차이가 실질적이지 않고 동일한 원리로 동일한 효과를 낼 때 인정되는 침해 형태입니다.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s Rule): 특허 침해가 성립하려면, 침해 의심 제품이 특허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원칙적으로 침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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