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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이야기

[판례 해설] 법 시행 전 취득한 기술, 나중에 사용하면 ‘산업기술 유출’로 처벌될까? (대법원 2024도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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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판결의 핵심 요지

과거에 특정 기술을 취득할 당시에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산업기술'이 아니었는데, 이후 법이 시행되거나 개정되어 그 기술이 보호 대상으로 지정되었다면, 과거에 취득했던 그 기술을 사용하는 행위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기술을 취득할 당시에 해당 법에 따른 보호 대상인 '산업기술'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이를 사용하더라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법률 없으면 범죄 없다"는 헌법상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재확인한 중요한 판결입니다.

사실관계 정리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법리 중심으로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 취득: 피고인들(개인 및 회사)은 특정 산업기술에 해당하는 정보를 취득했습니다.
  • 법률적 상황: 그런데 이들이 기술 정보를 취득할 당시에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이었거나, 해당 기술이 법에 따라 국가의 보호 대상인 '산업기술'로 공식적으로 지정·고시되기 전이었습니다.
  • 기술 사용 및 기소: 이후 피고인들은 과거에 취득했던 이 기술을 사용하거나 국외로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했습니다. 검찰은 이러한 '사용 행위'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피고인들을 기소했습니다.

소송의 경과

  • 원심(대구지방법원)의 판단: 법원은 피고인들의 여러 혐의 중,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기술을 취득할 당시에 법적인 보호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의 사용 행위만을 문제 삼아 이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단,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되었습니다.)
  • 검찰의 상고: 검사는 "기술을 취득한 시점이 아니라, 법으로 보호받게 된 이후에 '사용한 행위'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최종 결론 내렸습니다.

주요 법리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된 '엄격 해석의 원칙'을 이번 판결의 핵심적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1. 죄형법정주의와 형벌 법규의 엄격한 해석

'죄형법정주의'란 어떤 행위가 범죄로 처벌받으려면, 반드시 행위 당시에 시행 중인 법률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헌법상 대원칙입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형벌에 관한 법규를 해석할 때,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확장해석)하거나 법에 없는 내용을 유사하다는 이유로 적용(유추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2. '산업기술보호법' 조문의 문구 분석

대법원은 문제가 된 구 산업기술보호법 제14조 제1호의 문구를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 법 조문: "부정한 방법으로 대상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하는 행위 또는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
  • 대법원의 해석: 법 조문이 '사용'의 대상을 "그 취득한 산업기술'이라고 명시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사용'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려면, 그 전제로서 '취득'한 기술이 취득할 당시부터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산업기술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즉, '사용 행위'는 '불법적인 취득 행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3. 법원의 최종 결론

피고인들이 기술을 취득할 당시에는 해당 기술이 법에 따라 지정·고시된 '산업기술'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취득 행위는 이 법에 따른 '산업기술 부정 취득 행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이 기술을 사용했더라도, 이는 법에서 말하는 '그(불법적으로)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한 것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판결의 의의 및 해설

이번 판결은 국가 핵심 기술 보호와 관련된 법 적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한번 굳건히 했습니다. 어떤 행위가 나중에 법 개정으로 문제가 될 수 있더라도, 행위 당시의 법률을 기준으로 처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둘째, 산업기술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했습니다. 이 법에 따른 보호는 법률 제정이나 기술 지정·고시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되며, 그 이전의 취득 행위에까지 소급하여 효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기업과 연구자들이 기술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법적 불확실성을 줄여주었습니다.

다만 이 판결이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에 큰 공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무죄를 받았을 뿐, 별도의 법률인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기술 정보가 '영업비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산업기술보호법과는 별개로 언제든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용어 안내

  • 산업기술보호법(産業技術保護法):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약칭으로,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산업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 산업기술(産業技術): 이 법에 따라, 관계 정부 부처가 국가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공식적으로 지정하고 고시 또는 공고한 기술을 의미합니다.
  •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근대 형법의 기본 원칙입니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제정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확장해석·유추해석 금지의 원칙: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원칙으로, 법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거나, 법에 규정되지 않은 유사한 행위에 법을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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